KBS는 한반도를 많이 닮았다 2

(먼저 밝혀두자. 이 서동요는 내 이야기다. KBS라는 한국의 기성매체에서 기자로 17년 근무한 경험과 정치학, 경영학, 언론학을 전공한 지식인으로서의 이론이 뒷받침된 순수한 내 주장이다. 때문에 내 글은 KBS 새노조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다. 나는 KBS 새노조 공추위 간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내가 자유롭게 말할 권리를 포기하진 않는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언론인으로서의 자유를 억압당한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 전개될 내 서동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미리 못 박는다. 이른바 ‘조직’의 논리를 바탕으로 내 글을 재단하지 말라. 난 철저한 개인주의자임을 이미 밝혔다.)

지난 서동요 4화에서 나는 KBS의 개혁이 사람, 제도, 문화에 대한 총체적 혁신을 담보로 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가 이렇게 핍박받는 상황에서 낙하산 사장 퇴진에는 동참하지 않고 KBS의 지배구조,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회 구성만 변경하면 유토피아가 올 것처럼 거짓 광고하는 구 한나라당 정치인이나 KBS 구노조, 또는 먹물만 잔뜩 잡수신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무시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난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KBS에 별다른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속으로는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주장을 이런 시점에서 한다. 온 나라가 공영 방송사의 낙하산 사장들 때문에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현재의 낙하산 사장은 그대로 놔두고 앞으로 낙하산 사장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데 투쟁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궤변을 지껄인다. 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방송통신위원회나 KBS의 이사진의 구성을 변경하는 일은 ‘자리’와 ‘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언론학자들이나 시민단체들도 관심이 지대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들의 변경 또는 자칭 개선안에는 ‘자리’와 ‘이권’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꼼수가 있을지언정 KBS를 정말 정치적으로 독립된 공영방송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진정성은 희소하다.

둘째, 사실 그들은 KBS가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KBS가 별다른 변화없이 이대로 영속되기를 희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항상 엇박자 타이밍으로 행동한다. 지금처럼 특보 사장 김인규 때문에 공영방송의 언론자유가 명백히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사장 선임구조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끈다. 그러다가 정작 개혁적 사장이 들어와 KBS의 인적 쇄신을 비롯한 언론 개혁에 나서려고 하면 이를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라고 몰아붙이며 붉은 조끼를 입고 삭발하며 투쟁한다. 아니, 하는 척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한 이 낯익은, 그래서 조금은 식상한 방식이 이들의 생존 수법이다.

KBS 이사진을 백날 바꿔봐라. 만약 공영 방송의 독립을 지켜야 할 KBS의 많은 구성원들이 ‘속물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회사원’들이라면 KBS가 과연 진정한 공영방송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을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격하시킨 위대한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실마저도 KBS 구노조의 집행부를 친 이병순, 친 김인규로 묘사했다. 당시 집행부의 부위원장이었던 사람이 현 위원장이다. 게다가 KBS 구노조의 조합원 수는 무려 2800여명이다. 전체 직원의 60%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김인규 퇴진 투쟁에 나선 KBS 새노조의 명분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겠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공영방송의 독립보다는 개인의 안위 또는 협소한 직종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이런 조직에서 자율적 개혁이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KBS의 개혁은 사람에 대한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 KBS는 인적 쇄신이 가장 시급하다. 공화당 당직자 출신도 스스럼없이 입사가 가능한 진정한 국영기업이었던 이 회사에는 온갖 종류의 구악들이 여전히 엄존한다.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한 김인규와 같은 사람이 30년동안 출세가도를 달린 회사이니 더 설명해서 무엇할까.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독재정권에 빌붙었던 인간들이 호의호식했던 한국의 역사, 그런 사람들이 사회 최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구조와 흡사하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비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KBS에는 기회주의자들이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영남권에 줄 대고 호남권에 줄 서서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온존할 수 있는 구조다. 아니, 그런 말 없는 기회주의자들이 이른바 ‘화합형 인간’으로 출세하게 되는 구조다. 그런 이유 때문에 KBS 새노조의 파업에 적극적 지지를 선언하는 양심적 선배 언론인들이 희귀한 것이다. 한국, 그리고 KBS의 역사를 아는 나이 든 선배들은 그동안 집권여당이 진정으로 KBS에 바란 것은 ‘개혁’이 아니라 ‘현상 유지’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한국은 개혁의 나라가 아니라 기회주의의 나라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체득해왔다. 그래서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와의 단절은 꼭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거대한 물결을 역행해온 사내의 각종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달만을 꾀해온 기회주의자들도 쉽게 득세하지 못할 구조를 KBS에 심어야 한다. 출세지향형의 회사원이 아니라 양심 있는 언론인이 KBS를 이끌게 해야 한다. 사장이 바뀌어야 하고 간부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양심껏 행동하는 것이 추후에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본보기를 통해 ‘미래는 과거와는 명백히 다를 것이다’는 점을 구성원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복수(revenge)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응징(retribution)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말이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이 정의를 위한 시작이다. 그것이 KBS의 총체적 개혁을 위한 첫 걸음이다.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발했던 <9시 거짓말>의 저자로서, 현재 KBS 새 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를 맡고 있다. 트위터 계정은 @kyun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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